화순군, 호남의병『쌍산의소 봉기 116주년 기념식』추진
취재본부 김 시 정 기자 지역소식
화순 2023.04.2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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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군은 호남의 대표 항일 의병사인『쌍산의소 봉기 116주년 기념식』을 오는 4월 28일 10시 이양면 ‘쌍산의사’에서 진행한다고 밝혔다.
1907년 3월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서 일제의 국권 피탈을 막기 위한 호남 의병의 거점 ‘쌍산의소(국가사적 485호)’가 설치되고 이곳에서 대규모 호남의병 봉기가 일어났다.
이양면에 위치한 계당산 일대를 현지인들은 쌍산이라고 불렀는데, 을사조약 이후 국권피탈을 막기 위한 무장투쟁을 계획하던 호남 의병들이 이 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쌍산의소’라고 불린다.
1905년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통감정치에 저항한 을사의병이 진압된 후에도 호남 일대에서는 일제에 대한 저항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1907년 이양면 쌍봉리에 거주하던 양회일ㆍ임노복ㆍ임상영ㆍ정세현ㆍ안찬재 등의 호남 의인들이 증동마을 주민들의 협조를 받아 의병 활동에 필요한 무기제작소와 화약 저장고 유황굴, 의병 막사와 방어시설이 설치된 ‘쌍산의소’를 거점으로 대규모 의병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 쌍산의소를 만든 양회일 선생을 필두로 한 호남 의병들은 수개월 동안 치밀하게 봉기를 준비하여 직접 만든 무기를 들고 1907년 4월 능주 관아 공격을 시작으로 봉기했다. 이들은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둬 결국 화순읍을 점령하고 광주까지 점령한 뒤 북상할 계획을 세웠다.
안타깝게도 광주로 진격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양회일을 비롯한 ‘쌍산의소’ 주요 인물들이 순국 및 체포되었으며, 나머지 의병들 또한 동복 도마재에서 크게 패한 후 해산되었다.
그러나 ‘쌍산의소’는 1907년 4월 봉기 실패 후에도 명맥을 이어갔다. 정미조약 후 본격적인 항일 의병 활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날 때도 ‘쌍산의소’는 주요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호남에서 정미의병을 이끌었던 안재홍 선생과 호남 의병 부대 또한 보성에서 화순으로 의병 활동을 확장할 때 주요 거점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화순군 이양면에 위치한 2700평에 달하는 쌍산의소 유적지에는 당시에 호남의병들이 설치한 무기제작소와 유황굴, 의병막사터 및 방어시설 의병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1907년 3월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서 일제의 국권 피탈을 막기 위한 호남 의병의 거점 ‘쌍산의소(국가사적 485호)’가 설치되고 이곳에서 대규모 호남의병 봉기가 일어났다.
이양면에 위치한 계당산 일대를 현지인들은 쌍산이라고 불렀는데, 을사조약 이후 국권피탈을 막기 위한 무장투쟁을 계획하던 호남 의병들이 이 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쌍산의소’라고 불린다.
1905년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통감정치에 저항한 을사의병이 진압된 후에도 호남 일대에서는 일제에 대한 저항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1907년 이양면 쌍봉리에 거주하던 양회일ㆍ임노복ㆍ임상영ㆍ정세현ㆍ안찬재 등의 호남 의인들이 증동마을 주민들의 협조를 받아 의병 활동에 필요한 무기제작소와 화약 저장고 유황굴, 의병 막사와 방어시설이 설치된 ‘쌍산의소’를 거점으로 대규모 의병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 쌍산의소를 만든 양회일 선생을 필두로 한 호남 의병들은 수개월 동안 치밀하게 봉기를 준비하여 직접 만든 무기를 들고 1907년 4월 능주 관아 공격을 시작으로 봉기했다. 이들은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둬 결국 화순읍을 점령하고 광주까지 점령한 뒤 북상할 계획을 세웠다.
안타깝게도 광주로 진격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양회일을 비롯한 ‘쌍산의소’ 주요 인물들이 순국 및 체포되었으며, 나머지 의병들 또한 동복 도마재에서 크게 패한 후 해산되었다.
그러나 ‘쌍산의소’는 1907년 4월 봉기 실패 후에도 명맥을 이어갔다. 정미조약 후 본격적인 항일 의병 활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날 때도 ‘쌍산의소’는 주요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호남에서 정미의병을 이끌었던 안재홍 선생과 호남 의병 부대 또한 보성에서 화순으로 의병 활동을 확장할 때 주요 거점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화순군 이양면에 위치한 2700평에 달하는 쌍산의소 유적지에는 당시에 호남의병들이 설치한 무기제작소와 유황굴, 의병막사터 및 방어시설 의병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 취재본부 김 시 정 기자 jyn93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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